연락
얼마전에 깃허브에서 나를 보고 연락을 주신 분이 있다. 적어놓은 연락처는 이메일밖에 없었는데 카톡이 와서 당황했다.
(알고보니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다 찾아보시고 안되다가 결국 카톡 아이디 검색으로 연락이 닿은 것이었다...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집에 와서 바로 깃허브 프로필에 카카오톡 연락처 추가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반신반의였다. 엥? 이 분이 나에게 연락을 주신다고? 뭐지?
말씀을 들어보니 취업으로 고민 중인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느 주제던지 편하게 대화를 나누며 나의 고민을 좀 덜어주시려는 것 같았다. 솔직히 일하면서 시간내서 누군가를 도와주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 분은 개의치 않아하셨다.
그래서 대화를 하다가 결국 실제로 만나서 얘기를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약속을 잡고 뵙고 왔다. 사실 어떻게 보면 난 내 진로나 고민에 대한 해결 방법이나 방향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실천을 못하는 상태였다. 코딩테스트를 못뚫어서 막막함을 느꼈지만 꾸준히 공부해서 어느정도 뚫게 되었는데, 또 면접의 벽에 부딪히니 막막함을 다시 느꼈다. 공부를 하면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여자친구와 헤어져 의욕도 없고 학교 일도 바쁘고 매주 코딩테스트나 면접을 보느라 좀 지쳐있었다. 일단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공부하려니 처음부터 다시하는 느낌도 들고...
만남
(이후 내용은 나눴던 대화를 내 뇌에서 받아들인 후 다시 글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뇌피셜도 섞여있고 시간순도 아니다.)
사실 핑계라면 핑계지만 나에게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저보다 더 힘들어보이시는데요? 허허허"라고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렇다... 방금 일 마치고 오신 분보다, 개발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보신 분보다 내가 더 힘들어하고 있다니...
힘듦이라는게 정도는 다 다르겠지만 괜히 양심이 찔렸다.
원동력이나 휴식을 취하는 법도 여쭤봤다.
가장 큰 원동력은 재미인데,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기적인 재미나 보람이 더 큰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단기적인 재미는 힘이 적게 들지만 그만큼 보람이 적다. 장기적인 재미는 힘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보람이 크다. 그런 장기 프로젝트들이 여러가지 겹치면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재미로 계속해서 자기계발이나 일을 이어오신 것 같아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러다가 일들이 다 끝나면 혼자 여행가서 연락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생각을 비워야할 땐 그냥 몇 시간이고 걸어서 아예 머릿 속을 비우거나 엉킨 생각을 하나씩 곱씹어보며 풀어보신다고 했다. 나도 산책을 좋아하지만 혼자서 그렇게 해본 적은 없었기에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여행까진 아니고 집 앞 산책이라도 그렇게 해봐야겠다.
그러다가 나에게 "게임 개발이 재밌냐"고 물어보셨다.
예전까지만해도 재밌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차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 분은 정말 개발을 재미로, 즐기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쩔때는 구현이 막혔을때 그 순간의 고통이나 힘듦때문에 개발을 미룰때도 있었고, 결국 그걸 참고 해냈을 때의 재미도 있었기 때문에 반반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요즘은 사실 구현이 막혀도 어디에 물어볼 곳도 없고 해결 방법도 나와있지 않으니 힘듦이 더 커서 선뜻 대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태껏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개발에 대한 지식을 학습하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게임 개발을 하고 있었다. 응용해봤자 살짝 버무리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자 말씀하시기를 "창구"가 없다는 것이 좀 힘들다고 하셨다. 실제 마영전 개발하실 때 얘기를 들어보니 혼자서 물리엔진을 구현해야 하는데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난감했는데 결국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물어보고 공부했던거 바탕으로 직접 구현하셨다고. 그래서 기본기가 중요한 것이라고 하셨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이 외에도 실제 개발에 대해서 궁금한 점을 여쭤보고 개발썰도 직접 들어봤는데, 어쩌면 나는 "회사에서 가르쳐준다"라는 말을 학교나 학원처럼 시스템으로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과제를 하고,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보다 더 하드코어한 버전인 듯 하다. 어쨌든 결국 프로젝트에 기여하려면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때가 오는데, 지금 포트폴리오 작업하면서 그리고 신입 교육 과정에서 미리 대비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마무리
마지막으로 나에게 연락을 주시고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눈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다.
그저 선순환때문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나에게 도움을 주시고 내가 또 무언가를 느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그 다른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리고 선순환이 더 이어지지 않을 지 언정 일단 도움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거 자체가 너무 감사한 일이고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정말 이 선순환을 꼭 더 이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도 올해 상반기부터 게임업계 취업을 준비하면서 주변에 게임 개발 준비하는 사람도 없고 정보도 적어서 꼭 취업하면 학교 취업특강도 다녀보고 취준생이나 주니어에게 가이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개발자라는게 요구사항을 정해진 일정, 정해진 퀄리티로 만들어 납품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오늘 말씀 들어보니 남들이 해보지 않은 분야, 문제를 공부하고 분석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과학자의 느낌도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보를 끌어모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게 마치 무협지같은 느낌도 든다. 수소문해서 무공비급을 얻어 체득하고 어디 산 속에 숨어있는 고수를 찾아가서 자문을 구하기도 하고...
개발을 같이 하면 좋겠지만(토이 프로젝트 느낌으로 말씀하신 것 같다.)그건 취업하고 회사에 적응하고 나서 취미로 같이 해도 된다고 하셨다. 사실 퇴근하고 나서는 회사 코드 보고 싶어도 볼 수도 없고 결국 시간이 남는데, 그 시간에 할거 없으면 재미로 뭔가 만들어보자는 느낌으로 말해주셨다. 배울 것도 많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 깊은 시간이었고 먼저 연락해서 도움 주신 것에 너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