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AVGN을 재밌게 보고 있다며 에피소드를 하나 추천해줬다. MOTHER 시리즈 중 한 편인
MOTHER 2 (북미판 제목은 EarthBound) 리뷰다.
마더에 대해서 알고 있던 점은 마더 2 마지막 보스가 기괴하게 생겼다는 것, 마더 시리즈가 언더테일과 포켓몬 시리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유명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워낙 옛날 게임이기에 해본적도 없었고 정보를 접할 수도 없었다. 사실 어렸을 때 부터 일본 게임보다는 서양 게임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형이 구매한 게임 CD들이나 XBOX 콘솔, 스팀 등등... 요즘에야 프롬 소프트웨어나 다른 개발사들도 스팀에 많이 출시하고 그러지만... 그때 당시는 일본 게임은 닌텐도 DS로 출시된 퍼스트 파티나 서드파티 게임 외에는 직접 플레이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 스팀에 언더테일이라는 게임이 혜성같이 등장하여 수많은 팬덤과 밈을 만들어냈다. 워낙 재밌다는 평이 많았기 때문에 직접 플레이해봤었는데, 상당히 독특한 전투방식과 스토리텔링이 인상깊었다. 적과 전투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진행을 할 수 있다던가, 게임 속 등장인물들이 게임인 것을 인지하고 스토리가 전개되는 메타픽션적인 요소가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토비 폭스라는 개발자가 혼자서 게임의 모든 부분(심지어 스토리와 BGM마저도)을 만들어 냈다는 점이었다. 당시 1인 개발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렇게 인기를 끄는 게임을 혼자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어떤 동기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것은 현재까지 이어져서 지금은 재미로 명작 게임들이 어떤 것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는지나 개발 비화를 찾아보곤 한다.)
찾아보니 마더 2의 핵 롬(일종의 모드인가?)으로 시작했다고 하고, 스크린샷이나 플레이도 얼추 비슷해보여서 '음, 언더테일은 마더 시리즈에 영향을 받은게 맞구나.'하고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AVGN 영상을 보니 상당히 많은 부분이 영향을 받았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상식을 벗어난 캐릭터 및 배경과 재치있는 캐릭터들의 대사, 플레이어가 모험하며 쌓아온 유대를 후반부에 극대화하여 결국 최종 보스격의 존재를 물리치는 점 등등... 직접 플레이한 것이 아닌데도 여운이 상당히 오래가는 게임인 것을 보면 마더2는 정말 명작은 명작인 것 같다.
아무튼 언더테일에 대해서 찾아봤으니 이제 거슬러 올라가 마더 2를 검색해봤다. 개발 관련해 유명한 썰이 하나 있었다. 마더 2는 5년에 걸친 개발 끝에 출시를 하려고 했으나 여기저기 엉키고 설킨 데이터와 코드때문에 출시 직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HAL 연구소 사장 겸 프로그래머 였던 이와타 사토루는 코드를 보고 마더 2 총괄을 맡은 이토이 시게사토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대로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괜찮다면 돕겠습니다만, 이 일에 관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있는 부분을 활용하면서 수정해나가는 방법으로는 2년이 걸립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도 괜찮다면 반년 안에 하겠습니다.
당신이 제일 나은 방법으로 선택하십시오.
그러고나서는 이토이 시게사토는 처음부터 만드는 방법을 선택했고, 이에 이와타 사토루는 모두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툴을 만들었다. 이후 6개월만에 게임을 완성하고, 6개월 기간을 폴리싱을 거쳐 출시했다고 한다.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해서 혼자만 몰입한게 아니라 모두 함께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사운드, 기획, 시나리오, 그래픽 등 재료는 모두 갖춰져있었지만 단지 개발(코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라는 생각, 기존의 개발기간과 고민했던 시간과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출시가 가능했고, 때문에 지나온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태도... 보통은 이런 일화들을 보면 혼자서 뚝딱뚝딱 다 만들어버리고 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가 같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점이 참 본받아야할 자세라고 느꼈다.
이렇게 인터넷으로 이와타 사토루에 관련한 일화를 어느정도 읽어봤지만 그래도 게임과 경영에 대한 발언을 묶은 책이 있길래 구입해서 보게 되었다. 사실 책에 실려있는 일화는 이미 유명해서 인터넷에서 다 찾아볼 수 있지만 그래도 직접 읽으니 감명깊은 부분이 많았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분해서 본인 혹은 회사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해야한다' 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는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그렇고 인디 게임 만들다보니 '나는 디자인 감각은 워낙 없구나' 하는걸 느끼기도 하고 아직 경험 부족인 것 같다. 개발 관련된 것은 막연하게 공부하다보면, 경험하다보면 잘해지지 않을까 하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들기도 하고... 메타인지가 부족하다... 경험과 공부를 많이 해보자.
이와타 사토루와 주변인들과의 관계도 인상깊었다. 서로 잘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을 보완해주며 엄청난 시너지를 내는 동료이자 친구인 미야모토 시게루. 나와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을 찾아보자.
모두가 해피해지는 것을 추구하고, 항상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프로그래머...
언젠가 창업해서 프로그래머 출신 CEO가 되고 싶은 사람으로서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다 쓰고보니 읽게 된 동기만 가득한데... 그래도 워낙 그 과정이 재밌었던지라 안쓸래야 안쓸 수가 없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