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게임 개발 중 레퍼런스를 찾다가 추천글을 상당히 많이 봐서 구매해놨던 게임이다. 젤다라이크인척하는 소울라이크라고들 하는데 재밌긴 재밌었다. 처음 두세 시간 정도 플레이했을 땐 ‘이걸 왜 7년이나 개발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계속 플레이하다 보니 그 의문은 점차 ‘이게 정말 인디 게임, 그것도 1인 개발 수준에서 나올 수 있는 게임 디자인인가?’라는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이 게임의 가장 독특한 점은 게임 시스템을 월드 곳곳에 있는 "설명서"의 찢어진 페이지를 통해 안내한다는 것이다. 설명서의 내용이나 그림이 매우 잘 짜여져 있을 뿐 아니라, 각각의 페이지가 배치된 위치도 절묘해서 탐험하며 하나씩 모으고 분석하는 재미가 있다. 플레이하면서 "아, 이게 이렇게 하는 거였구나", "아, 이게 나중에 이렇게 되는구나"하는 쾌감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게임을 하는 내내 '현실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나'와 '게임 월드를 탐험하는 주인공 여우'가 분리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길을 잃거나 퍼즐을 풀 때, 설명서를 읽을 때마다 몰입이 깨지고 플레이어 본인의 의식이 게임에서 분리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느낌이 든다. 설명서를 자주 들춰봐야 하고, 레벨 디자인이 쿼터뷰 시점과 숨겨진 요소에 지나치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 도중 진행 방향을 찾지 못한다면 이런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어 흥미를 잃기 쉽다.
하지만 설명서 시스템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레벨 디자인은 짜임새 있게 잘 구성되어 있다. 또 앞으로 어떤 게임에서 이런 설명서 감성을 느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 게임만한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설명서가 나오면 ‘튜닉 베꼈다’는 소리를 들을 테니, 다른 방식으로 이 감성을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단점보단 독특한 장점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게임을 추천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재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절대 스포일러를 당하거나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지 말아야 한다.
내가 좋았던 점
- 설명서 시스템. 월드에 각각 페이지 나눠서 배치해놓고 하나씩 모을때마다 막힌 진행 뚫어주는 게 너무 좋음. 양면도 잘 활용했고 스토리도 이걸로 설명 잘하고... 사실상 설명서가 이 게임의 대부분인듯.
- 설명서에 지도가 나와있어도 쿼터뷰 시점 활용해서 비밀장소나 통로 등을 만들어냄. 탐험이나 메트로바니아 게임에 탐험 강조하려고 굳이 지도를 없앨 필요가 없구나 싶었음. 어떤 정보를 유저에게 보여줄 지만 잘 선택하면 되는거임.
- 심심할때 한번씩 나와주는 새로운 기믹, 파워업. 사실 종류는 뻔해서 별 감흥 없었는데 지루할뻔 할 때 쯤 너무 적재적소에 잘 나옴.
- 지역에 따라 환경도 다양하고 적도 다양함.
- 은근히 보스 다양하고 디테일함. 전투도 불편함없이 부드럽게 잘 만들어져있음.
- 뭔가를 모르는 상태에서 처음 겪었을 때 벙찜과 알게 되었을 때 쾌감을 잘 녹여냄. 처음 본 몬스터의 괴상한 행동이라던가 다크소울에서 큰 해골보고 멈칫하는 그런 느낌? 그 이후 파훼법 알게되었을 땐 아 이런거구나 싶고
내가 아쉬웠던 점
- 기승전결로 끊어주면 좋겠는데 기승승승마냥 계속 어려워지고 계속 미스테리가 쌓임. 나중가선 한 방에 해소... 확실하게 매듭짓고 끝내줬으면 좋았을 듯.
- 나중에 설명서 많이 넘기다보니까... 넘기는 연출이 너무 어지러움.
- 너무 쿼터뷰 시점 활용한 보물, 비밀 장소 숨기기를 많이 넣어놔서, 이런거 찾으려고 시점 돌려보고 막 벽에 비빌때마다 몰입이 깨짐.
음... 근데 레퍼런스랍시고 게임 여러가지 해봤는데 이게 확실하게 개발에 도움이 되는건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래도 재밌었으니까 됐음.